조선후기 유학자가 구상하고 설계한 군용 잠수함
띠로리리
유머
대역갤에 올린 걸 비군사 역떡 자르고 재업함)
1875년 영국함선이 거문도의 동도를 조사할 때 주민대표가 함선에 올라 무기체계와 근대적인 문물을 목격하고 체험한 일에 대해서는 상세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거문도의 대표적 유학자인 귤은 김류는 그런 상황을 모두 목도했고 그래서 이양선의 동향에 관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책자로 묶어 두었으며, 잠수함의 제작방안을 연구하는 등 유학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학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다.
귤은 김류(橘隱 金瀏)가 그 주인공임.
거문도에 거주하던 유학자고, 장성에서 성리학자 기정진 밑에서 공부했음. 과거에 실패하고 낙향해서 거문도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는데 이때 그는 거문도를 기웃거리던 영국, 프랑스, 러시아 해군과 접촉했음.
1875년에(점령사건 전임) 영국 해군이 거문도에 잠시 와서 주민들과 교류를 한 적이 있음. 영국군 기록으로는 주민 대표가 글을 되게 잘 썼다고 하는데, 이때 거문도에서 가장 잘 배운 사람인 김류 밑에서 배운 이들이 주민 대표로 갔을 가능성이 높음.
이때 주민대표단은 영국 해군의 배를 소개받고 페일에일 맥주도 마셔보고 행진곡도 듣고 했음. 엔진룸에 들어가보기도 했고. 그리고 이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 스승님에게 본 걸 얘기했나봄.
당시 김류는 꽤 노인이었는데 31세부터 거문도를 들락거리던 이양선들을 여러 차례 본 적 있어서 외국 침략에 경계심이 높았다고 함. 후학들에게 서양선 구조를 듣고는 나중에 저서에서 그 대응책으로 잠수함을 구상했음. 인용하면 이럼.
노끈을 잡은 사람들이 똑같이 몇 자를 풀어주어 노끈머리에 달 린 重物이 물밑에 접착하면 선체는 반드시 물위로 솟아나올 것이다. 그렇게 한 뒤에 銳頭와 丸門을 열고 총알을 내쏘면 적중되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요, 다시 환문을 닫고 노끈을 잡은 사람으로 하여금 똑같이 중물을 맨 노끈을 걸어 올리면 선체는 다시 물속에 잠겨 오리와 같이 보일 것이니 적들은 반드시 놀래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것이다. 적의 배 한척에 우리 島船 3~4척이 두세 번만 총탄을 쏜다면 거의 파괴될 것이다.
딱히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혁신적이지.

거문도의 명칭이 '큰 학자의 섬'인 이유도 김류 때문임. 원래 거문도는 이름없는 섬이었음.
나중에 거문도에 온 청나라 해군 제독 정여창이 주민들의 학식 수준이 높은 걸 궁금해하다가 김류의 이야기를 듣고, 위대한 학자가 있는 섬이라면서 이름을 그렇게 부르라고 조선 정부에 건의했고, 그게 공식적으로 섬의 이름이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음
아직도 거문도와 청산도에는 김류 선생을 모시는 사당인 귤은당이 남아있음. 거문도 갈 일 있으면 한 번쯤 들러도 될듯?
출처
논문 거문도가 경험한 제국주의와 근대
무료로 풀려있으니 한번 보셈. 재밌음
아래 내용 확인하고
계속 읽어 보세요!
원하지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