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서 양질의 군대가 지휘관에 의해 망한 사례들

전투에서 양질의 군대가 지휘관에 의해 망한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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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전투에서 양질의 군대가 지휘관에 의해 씹창난 사례들

칸나이 전투 (기원전 216년) – 로마 공화국 vs 카르타고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군은 약 8만 명 규모의 당시 기준 최고 수준의 훈련과 조직력을 가진 대군으로
한니발의 5만 카르타고군을 압도할 수 있는 위치였다.

로마 집정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중앙을 집중 공격했고
한니발의 양익 후퇴 유도(초승형 전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앙으로 돌진하다가 완전 포위당해 섬멸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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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이토부르크 숲 전투 (서기 9년) – 로마 제국 vs 게르만 부족

로마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전문 군대였으며
전투 당시에는 정예 3개 군단(17, 18, 19군단, 약 2만 명 이상) 및 보조 부대가 이루어져 있었다.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는 아르미니우스의 배신을 의심하지 않고,
게르만 반란 소식을 듣고 숲 속 좁은 길로 진군.

지형(숲, 늪지)과 기상(비)를 무시하고 부대를 길게 늘어트린 상태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3개 군단이 거의 전멸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바루스, 내 군단을 돌려내라!”라고 탄식할 정도로 충격적으로 패배당했고.
로마의 게르마니아 정복 정책이 좌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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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틴 전투 (1187년) - 예루살렘 왕국 vs 아이유브 왕조

예루살렘 왕국의 기독교 연합군은 당대 유럽 전술의 정점이었던
중장기사단(성전 기사단, 구호 기사단 등)과 베테랑 보병으로 구성된 최정예 군대였다.

예루살렘 국왕 기 드 루지냥은 살라딘의 도발에 넘어가,
물 한 모금 없는 한여름의 팔레스타인 사막을 가로질러 진군하는 최악의 결정을 내린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정예 병력은 싸우기도 전에 탈수와 열사병으로 지쳤고,
결국 물길을 차단한 살라딘의 이슬람 군대에게 포위당해 전멸했다.

이 전투로 예루살렘 왕국의 주력 정예병이 증발하면서 예루살렘은 살라딘에게 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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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쿠르 전투 (1415년) - 프랑스 왕국 vs 잉글랜드 왕국

백년전쟁 당시 14,000–15,000명의 프랑스군은 수적으로 6000-8100명의 헨리 5세의 영국군을 압도했고,
당대 최고 수준의 갑옷과 무장, 그리고 전투 실력을 갖춘 프랑스 고위 귀족과 기사들이 총출동한 정예병이었다.

샤를 달브레를 비롯한 프랑스 지휘부는 수적 우위만 믿고 극도로 오만했다.

좁고 진흙탕이 된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공을 세우겠다'는 일념 하에 중장기사들을 밀어 넣었으며
자신들의 보병과 노궁병들이 사격할 공간도 주지 않고 밀치며 전진했다.
진흙탕에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프랑스 정예 기사들은 영국군 장궁병들의 표적이 되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넘어지 압사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6000명의 프랑스 군사 귀족의 한 세대가 이 하루 만에 절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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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빅혼 전투 (1876년) – 미국 제7기병대 vs 라코타-샤이엔 원주민 연합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대령의 지휘 하의 미 육군 제7기병대
약 600-700명은 당시 미군 기준으로 잘 훈련된 기병대였다.

정찰 부족으로 인한 적 규모 과소평가, 3개로 부대 분산 상태에서
“탐욕스럽게 굴지 말고 기다려라”는 상관의 조언을 무시하고 피로한 상태에서 급습했고
커스터와 부대 약 260명 이상 사망해 대부분 전멸한다.

북미 원주민 전쟁에서 미군의 상징적 대패로 커스터의 과도한 자신감과 영광욕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image.png 전투에서 양질의 군대가 지휘관에 의해 씹창난 사례들

이산들와나 전투 (1879년) – 영국군 vs 줄루족

현대식 소총 및 포병 보유한 영국군 약 1,700명이 약간의 총과 창과 방패 중심인 2만명 줄루 임피를 맞이했는데
지휘관 첼름스포드 경의 진영 방어 미흡했고 탄약 보급 문제, 부대가 과도하게 분산된 상태에서 공격당했다.

영국군 약 1,300명이 사망했고 기술적으로 우월한 서구군이
‘원시’ 군대에게 패한 충격적 사례로 영국 제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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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 전투 (1916년) - 영국군 vs 독일군

영국이 오랜 기간 준비한 신형 주력군(Kitchener's Army)은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대규모 포병 지원을 받는 양질의 보병들이었다.

영국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헤이그 장군은 일주일간의 대규모 포격으로
독일군의 철조망과 기관총 진지가 모두 파괴되었을 것이라 맹신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뛰지 말고 무거운 군장을 멘 채 일렬로 줄을 맞춰 천천히 걸어서 진격하라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명령을 내렸다.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는 멀쩡했고, 걸어오는 영국군 정예 보병들은 그대로 표적이 되었다.

공세 첫날에만 5만 7천 명의 사상자(사망 1만 9천 명)가 발생하는,
영국 군사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기록했다.


  • BEST 8 시간 전
    칠천량 해전 (1597년) – 조선 수군 vs 일본 수군
    임진왜란 당시 육해군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개전초부터 판옥선을 중심으로 일본군에 연전연승하며 숙련된 조선수군을 무능한 지휘관의 판단하나로 사지에 기어들어가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기록한 사례
  • BEST8 시간 전
    음...첫번째인 칸나이 전투는 약간은 이견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나 파울루스가 명장이었다는건 아니지만, 이 장군들이 내놓은 전략전술이 극히 잘못된건 아니었고, 오히려 "기병 전력은 열세이니 로마군 우익 기병대는 강을 옆에 끼고서 전장을 축소하여 수적 열세를 최대한 만회하면서 시간을 벌고, 로마 기병대보다 수가 많은 동맹시 기병대가 누미디아 기병대 상대로 버텨주는 동안 우세한 보병 전력을 이용하여 중앙 돌파를 시도한다"는 전술이 그렇게 졸렬한 전술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단지 한니발이 이런 의도를 완벽하게 읽고서 초승달 대형으로 로마군 보병대의 충격력을 흡수한 것, 그리고 이 대형이 로마군의 충격력을 흡수하며 오목해지면서 로마군 보병 대열의 지나친 과밀화가 벌어진 것(이 또한 한니발의 사전 계획이었지만.), 그리고 로마군이 예비대의 활용에서 실패했던게 칸나이 전투의 전훈이라고 봅니다.
  • BEST  8 시간 전
     즉 지휘관의 자질 차이가 승부를 가른건 맞지만 한니발이 매우 유능했을뿐, 로마군도 엄청 졸렬한 지휘를 한 것까지는 아니었다는거죠. 그래서 더더욱 칸나이 전투가 현대 사관학교에서도 가르치는, 전쟁사의 불후의 교보재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순히 한쪽이 바보여서 벌어진 대승은 역사에 많습니다. 칸나이 전투가 특별한 이유는 로마군도 나름 사리에 맞는 판단을 했음에도, 한니발의 천재적 전술적 재능이 역사적 대이변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BEST 12 분 전
    세계전사에 길이 빛나는 원균의 업적: 이순신이 군대빨이 아니라. 조선수군이 이순신빨이었음을 보여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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